[2020년 8월 독립운동가]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의 주춧돌을 놓다 - 이석영 선생

2020. 8. 12. 17:00투비랜드 생활정보

 

[2020년 8월 독립운동가]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의 주춧돌을 놓다 - 이석영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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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비랜드의 정보 이야기, 백 삼십 여섯 번째 시작합니다

 


 

이석영

 

이석영 선생은 1855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고

1910년 동생 이회영, 이시영등 6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독립군 기지 개척 등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해서 서간도로 망명했습니다

 

 

선생의 경제적 지원으로

경학사 설립하다

 

경학사는 선생의 재정적 지원으로 1911년 서간도에

설립된 한인자치 기관으로, 농업개발, 민족, 군사교육을

해서 무장항일 투쟁을 전개하고자 했으나

1911년과 1912년 연이은 대흉년으로 심각한 재정난에

부딪히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려움 속에도

신흥무관학교 설립하다

 

선생이 기부한 자금으로 신흥강습소가 설립,

독립군 사관 양성을 위해 군사훈련을 실시했고,

신흥강습소가 1912년 신흥학교로 개편되면서

교장을 맡았으며, 1920년까지 3,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신흥무관학교의

활약상

 

이들은 3·1운동 이후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군의 근간을 이루며

혁혁한 전과를 세우면서 독립전쟁사에서

찬란한 자취를 남겼고, 이러한 선생의 재정적 지원이

없었다면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의 탄생은

힘들거 같았습니다.

 

 

이석영 선생의

안타까운 마지막 삶

 

일제의 탄압으로 1920년 신흥무관학교가 폐교되자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선생은 노후에 끼니조차

잇기 힘든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1934년 상하이

빈민가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이석영 선생

건국훈장 받다

 

독립군 양성에 일생을 바친 이석영 선생에게

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습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석영 6형제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조상 대대로

내려온 권세와 재산을 포기하고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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